교회광장/새벽설교 요약
2024.11.22 (금) 시편 100:1-5
2024.11.22 (금) 시편 100:1-5
2024.11.192024.11.22 (금) 시편 100:1-5 찬송가 40장 피곤하거나 잠이 올 때 우리는 입을 크게 벌리며 깊게 숨을 쉬는 하품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하품이라는 생리현상은 ‘전염’된다고 합니다. 꼭 졸리거나 피곤하지 않더라도 옆 사람이 하품을 하면 나도 모르게 따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비단 하품만이 아닙니다. 사람의 많은 감정과 마음이 이렇게 전염됩니다. 기쁨과 슬픔이, 즐거움과 괴로움이, 불만과 만족이 소리 없이 깊게 스며듭니다. 그래서 내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어떤 사람들과 신앙생활 하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의 시인은 하나님을 향한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주변으로 전염시키고 널리 퍼뜨립니다. 그는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에게 함께 찬송하고 감사할 ..
2024.11.21 (목) 사사기 9:7-15
2024.11.21 (목) 사사기 9:7-15
2024.11.192024.11.21 (목) 사사기 9:7-15 찬송가 325장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왕이 되어 달라는 여청을 한결같이 거절합니다. 이는 기드온과 그의 아들들의 모습니다. 그들은 백성의 지지와 기대를 등에 업고 쉽게 왕의 권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자신들의 본분임을 알았습니다. 반면 왕이 되어 달라는 여청을 단번에 수락한 가시나무는 자격이 없는 아비멜렉을 가리킵니다. 요담은 단지 자신들의 골육이니 이득이 될 것이라는 이기심에 아비멜렉을 도운 세겜 사람들을 향해 단언합니다. 여호와를 왕으로 섬기지 않을 때 평안이 아닌 핍박과 박해가 있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요담의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의 통치..
2024.11.20 (수) 마태복음 13:18-23
2024.11.20 (수) 마태복음 13:18-23
2024.11.192024.11.20 (수) 마태복음 13:18-23 찬송가 285장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렙니다. 자기가 투자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거두는 이일은 요즘 말로 하면 ‘대박사건’입니다. 많은 사람이 물질을 모으기 위해 애쓰며 이것저것 투자에도 관심을 보입니다. 투자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올바른 투자로 백 배 삼십 배만 얻는다 해도 대단한 성공일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복은 물질의 복이 아닌 영적인 복입니다. 씨를 뿌려서 많은 열매를 맺으려면 땅이 좋아야 하듯 영적 결실을 위해서는 마음반이 좋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말씀을 듣고서도 깨닫지 못해 열매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졸거나 다..
2024.11.19 (화) 고린도후서 2:14-17
2024.11.19 (화) 고린도후서 2:14-17
2024.11.192024.11.19 (화) 고린도후서 2:14-17 찬송가 461장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사도 바울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칭합니다. 여기서 향기는 헬라어 ‘유오디아’로 희생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드리는 향기를 말합니다. 즉 우리는 자신을 죽이고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죽고 오직 그리스도가 드러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됩니다. 우리 삶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먹고 살아가는 장사꾼’의 모습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형편없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진정한 개혁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
2024.11.18 (월) 히브리서12:1-10
2024.11.18 (월) 히브리서12:1-10
2024.11.192024.11.18 (월) 히브리서12:1-10 찬송가 272장 살면서 고난과 고통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심지어 잘못을 저질러 징계를 받기도 합니다. 이는 분명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그럼ㅇ도 그리스도인은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고난을 통해 인생이 새로워지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우뚝 서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세상의 성공이나 복이 아닙니다. 오직 거룩함입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면서도 왜 우리에게 고난도 주시고 때론 징계도 하시는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자녀답고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생활을 계속하면서도 변화나 성장이 없는 까닭은 거룩함에 대한 열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허랑방탕하던 탕자가 돌..
2024.11.15 (금) 사도행전 9:10-19
2024.11.15 (금) 사도행전 9:10-19
2024.11.112024.11.15 (금) 사도행전 9:10-19 찬송가 366장 사도 바울에게 영혼의 고통을 씨어 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아나니아입니다. 다메식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그 빛 때문에 며칠 동안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였는데 그대 마침 하나님의 지시로 아나니아가 그를 도와줍니다. 단지 육신의 치료만 도운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전에 자신에게 박해받은 수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의 아픔을 알게 되고 속죄와 치유의 과정을 거칩니다. 사도 바울이 열두 사도 앞에서 사도로 인정을 받고 전도 여행을 할 때 조력자 바나바가 필요했듯이 그가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는 영적 간병인 아나니아의 조력이 필요했습니다. 내 주위에는 바울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
2024.11.14 (목) 시편 99:1-9
2024.11.14 (목) 시편 99:1-9
2024.11.112024.11.14 (목) 시편 99:1-9 찬송가 274장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고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모든 일을 공의롭고 정의롭게 행하십니다. 공의란 하나님과 사람 간의 관계에서 사용됩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시고 그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고 심판하십니다. 반면 정의는 사람 간의 관계에서 사용됩니다. 그러나 공의와 정의가 따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공의가 깨질 때 나와 다른 사람 간의 정의도 깨집니다. 이는 아담이 죄를 지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을 때 책임을 하와에게 전가하며 인간관계도 깨진 것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공의가 깨지면 사람과의 정의도 제대로 세워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거룩하신 하나님은 심판도 하지만 용서해 주시..
2024.11.13 (수) 하박국 2:1-4
2024.11.13 (수) 하박국 2:1-4
2024.11.112024.11.13 (수) 하박국 2:1-4 찬송가 542장 우리 중에 믿음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조금 더 강한 믿음과 약한 믿음이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강한 믿음이든 약한 믿음이든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인내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렸다고 당장 열매가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열매는 일찍 열기기도 하고 어떤 열매는 늦게 열릴 수도 있습니다. 고난을 만났을 때 우리가 힘든 이유는 ’늦게‘ 열리는 열매 때문일 경우가 많습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을 원망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살아 계심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원망 자체가 믿는다는 증거입니다. 다만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인내하며 가꾸면 열매를 맺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인내가 곧 믿음입니다. ’비록 더딜지..
2024.11.12 (화) 누가복음 18:9-14
2024.11.12 (화) 누가복음 18:9-14
2024.11.112024.11.12 (화) 누가복음 18:9-14 찬송가 364장 금식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종교의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예수님 말씀과 달리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를 자랑합니다. 금식을 통해 정기적으로 육신의 본능을 절제하는 신앙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세리는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합니다. 가슴을 치며 하나님께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고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엎드려 눈물을 흘립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보다 세리가 의롭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바리새인이 ’자기 의‘를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자기 스스로를 자랑하는 ’자기 의‘는 마음과 언행에서 ’하나님‘보다 ’나 자신‘을 우선하는 것에서 드..
2024.11.11 (월) 데살로니가전서 1:1-10
2024.11.11 (월) 데살로니가전서 1:1-10
2024.11.112024.11.11 (월) 데살로니가전서 1:1-10 찬송가 400장 믿음의 역사란 언제나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말하고 행동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랑의 수고는 그저 감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희생과 헌신이 뒤따르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또한 소망의 인내는 언젠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오늘 나에게 주어진 무거운 현실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견뎌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 소망, 사랑은 말이나 지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만 가능합니다. 여기서 능력이란 죄인이 회개하고 삶을 돌이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주님의 권능을 말합니다. 성령님은 이 일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도록 역사하며 도우십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큰 확신도 주십니다. ..
2024.11.8 (금) 미가 3:5-12
2024.11.8 (금) 미가 3:5-12
2024.11.042024.11.8 (금) 미가 3:5-12 찬송가 215장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과 뜻을 전하고 선포하도록 택하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선지자들입니다. 하나님은 때마다 선지자들을 보내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을 꾸짖으셨습니다. 부정과 불법을 행하는 백성을 책망하셨습니다. 선지자는 이렇게 하나님의 대변자였습니다. 그런데 선지자 둘ㅇ에 부정과 불법을 행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미가 선지자가 그들의 행태를 고발합니다. 반면 미가는 어떤 선지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서 정의와 용기로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고 꾸짖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는 불법이 없습니다. 부정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진리..
2024.11.7 (목) 요한복음 13:34-35
2024.11.7 (목) 요한복음 13:34-35
2024.11.042024.11.7 (목) 요한복음 13:34-35 찬송가 220장 계명은 구약시대에도 많이 있었고 십계명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요약해 주기도 하신 예수님이 왜 ’새 계명‘이라고 하셨을까요? 이전과 차이점이 있다면 ’서로 사랑‘입니다. 율법적인 의무감에서가 아닌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먼저. 끝까지 사랑,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는 죽기까지 사랑입니다. 일방적인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새 계명은 한쪽만 주는 사랑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사랑입니다. 아울러 우리가 이렇게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로서 당연한 기도 생활이나 해박한 성경 지식, 성실한 교회봉사 정기적인 헌금 생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