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광장
25년 10월 9일 (목) - 마태복음 4:8-11
25년 10월 9일 (목) - 마태복음 4:8-11
2025.10.0925년 10월 9일 (목) - 마태복음 4:8-11 찬송가 342장 예수님은 풍성한 생명을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지만, 마귀는 '도둑'이요 '거짓의 아비'라는 별명처럼 끊임없는 거짓말로 우리를 속이고 유혹하여 사람에 이르게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를 속이는 마귀의 수법을 알려 큽니다. 첫 번째 시험이 우리의 '생존 욕구', 두 번째 시험이 '안전 욕구'를 자극한 것이라면, 마지막 시험은 '통제 욕구'를 이용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이끌고, 그곳에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고는 세상의 영광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조건을 붙이는데 자기에게 엎드려 경배하라고 합니다. '엎드리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헵토'는 '넘어지다', '실패하다'와 더불어 '굴복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10월 1주 벧엘성가대
10월 1주 벧엘성가대
2025.10.09원곡:주의 귀한 사랑 _ 지휘자: 양희창 반주자: 허세민 _ 25.10.05.(일)
25년 10월 8일 (수) - 사무엘상 16:1-13
25년 10월 8일 (수) - 사무엘상 16:1-13
2025.10.0825년 10월 8일 (수) - 사무엘상 16:1-13 찬송가 182장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이새의 집으로 갔습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큰아들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들어 했지만, 하나님을 그 자리에 없는 막내아들 다윗을 굳이 불러서 기름을 붓게 하셨습니다. 이때 다윗은 '기름 부음'의 의미를 알아차렸을까요? 그의 아버지나 형들은 어땠을까요? 사무엘은 아무 설명도 하지 않습니다. 단지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말없이 떠나갔을 뿐입니다. 아무도 `기름 부음'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사무엘이 입을 다물고 있는 한 사울을 대신하여 다윗을 왕으로 삼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아무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다윗 자신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기름 부음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왜..
25년 10월 7일 (화) - 시편 30:1-7
25년 10월 7일 (화) - 시편 30:1-7
2025.10.0725년 10월 7일 (화) - 시편 30:1-7 찬송가 337장 '백야'는 기울어진 지구 자전축 때문에 일정 시기 북극 지방에 낮만 계속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정반대 현상도 있습니다. 자전축 기울어진 방향이 반대가 되는 시기 북극 지방에 이번에는 밤만 계속되는데 이것이 '극야'입니다. 스웨덴의 경우 백야는 여름에 극야는 겨울에 생깁니다. 오늘 본문에는 몇몇 부정적인 단어들이 나옵니다. 스올 무덤 노염 울음 같은 것들입니다. 살다 보면 이렇게 어두운 말들 속에 삶 전체가 매몰될 때가 있습니다. 빠져나갈 구멍 없는 길고 긴 어둠의 날이 무덤처럼 내 인생을 뒤덮어 두려움과 슬픔의 '극야'를 경험하게 합니다. 행여 이런 일이 닥쳐올지라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좌절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그..
25년 10월 6일 (월) - 고린도전서 12:4-11
25년 10월 6일 (월) - 고린도전서 12:4-11
2025.10.0625년 10월 6일 (월) - 고린도전서 12:4-11 찬송가 323장 고린도 교회는 능력주의가 문제였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에서 세운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선교에 뛰어든 시간은 1년 6개월에 불과했으나 고린도 교인들의 열심과 뜨거운 신앙 덕분에 수많은 성령의 은사가 쏟아졌습니다. 짧은 기간에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신앙의 연륜이 짧은 탓에 은사를 세속적인 방식 으로 접근했습니다. 은사가 있는 사람은 은사가 없는 사람을 무시했습니다. 은사를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어떤 은사가 더 높은지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위기는 성장통이 기도 했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알게 된 순간이 분열의 순간일수도 있지만 진정한 사랑이 시작 되는 순간..
25년 10월 3일 (금) - 누가복음 19:1-9
25년 10월 3일 (금) - 누가복음 19:1-9
2025.10.0325년 10월 3일 (금) - 누가복음 19:1-9 찬송가 93장 삭개오는 사회적인 지위도 있었고 부유했지만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공동체 안에서 소외당하던 색개오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했지만 예수님은 그를 좋은 친구로 만나 주셨습니다. 삭개오는 집에 들어서자 '서서' 어린아이처럼 소리쳤습니다. 삭개오는 좋으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 삶이 변했습니다. 물질적인 삶에서 나눔의 삶으로 소유의 삶에서 베푸는 삶으로 그리고 자기중심의 삶에서 이웃 중심의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향하여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삭개오의 사회적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초대해 주셨습니다. 돈과 ..
25년 10월 2일 (목) - 말라기 2:17- 3:6
25년 10월 2일 (목) - 말라기 2:17- 3:6
2025.10.0225년 10월 2일 (목) - 말라기 2:17- 3:6 찬송가 286장 하나님의 은혜로 바벨론에서의 포로생활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은 어려운 형편과 환경에서도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을 다시 쌓았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영광과 축복이 더뎌 보이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식고 믿음은 위선과 외식으로 변해갔습 니다. 성전의 기능은 멈추지 않았으나 겉만 번지르르한 형식적인 예배만 드리는 곳으로 전락 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잃어버리고 자기 멋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공평과 정의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느냐고 비아냥거리고 투덜대며 자신의 기대와 뜻대로 되지 않는 이유와 원인을 하나님께 전가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이 다른 사람들, 즉 이방 민족들을 향한 것이라고 생..
9월 3주 어린이 설교
9월 3주 어린이 설교
2025.10.02코스모스, 주께 가까이 시편 145:18 & 설교자 : 군정원 선생님
25년 10월 1일 (수) - 시편 24:1-6
25년 10월 1일 (수) - 시편 24:1-6
2025.10.0125년 10월 1일 (수) - 시편 24:1-6 찬송가 370장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찾고 그 앞에 나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누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사람을 포함한 온 세상 만물의 주인이고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세상을 주관하고 다스리시는 왕이라는 말씀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만나려면 우리를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산. 즉 그가 거하시는 성전에 올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요구되는 자격과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손이 깨끗해야 합니다. 이것은 행실의 깨끗함을 의미합니다. 즉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둘째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이것은 마음에 부정한 것 즉 음욕, 탐욕. 불신과 근..
9월 4주 주일설교
9월 4주 주일설교
2025.09.30하나님의 가정으로 회복하라 누가복음 15:11-24 & 설교자 : 염순옥 목사
25년 9월 30일 (화) - 마태복음 11:16-19
25년 9월 30일 (화) - 마태복음 11:16-19
2025.09.3025년 9월 30일 (화) - 마태복음 11:16-19 찬송가 440장 예수님은 비유를 들어 엇박자 세태에 대해 안타까워하십니다. 아이들이 장터에서 놀면서 어른들이 하던 모습을 따라 합니다. 아이들의 놀이는 혼례와 장례를 흉내 낸 것입니다. 장터는 헬 라어로 '아고라'입니다. 아고라는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인데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 기능과 함께 서로 소통하는 공적인 대화 장소를 의미합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 비유를 말씀하신 배경은 세례요한 때문입니다. 요한은 요단강에서 죄의 심판을 선포하고 용서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때 많은 백성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으나 더 크게 회개하고 애통해야 할 당시 종교인이나 사회의 지배층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
25년 9월 29일 (월) - 요한복음 21:15-17
25년 9월 29일 (월) - 요한복음 21:15-17
2025.09.2925년 9월 29일 (월) - 요한복음 21:15-17 찬송가 80장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3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손수 따뜻한 아침밥을 지어 주셨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이미 3번이나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인지라 자신의 사랑이 예수님이 물으신 완전한 아가페 사랑에 미치지 못함을 뼈저리게 알았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주님의 사랑에는 미치지 못하는 필리아 사랑이지만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베드로는 어떻게 감히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었을까요? 밤새 고기 잡느라 지치고 차가운 제자들이 몸을 녹이도록 지피신 뜨거운 숯불과 손수 지으신 따뜻한 밥상 앞에서 베드로는 주님의 사랑을 보았을 것입니다. 주님이 "요한의 아들 시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