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4.12.9 (월) 마태복음 5:43-48
2024.12.9 (월) 마태복음 5:43-48
2024.12.092024.12.9 (월) 마태복음 5:43-48 찬송가 218장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면, 그래서 마음을 품고 있으면 그 미움이 우리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영혼을 피폐하게 합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에는 “원수를 갚으려 너 자신을 괴롭히고 병들게 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즉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잠20:22).”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며 기다리면 나머지는 나의 괴로움과 상처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이 친히 일하십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용서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자신을 못 박은 이들을 위해 마음을 다해 기도하셨습니다..
2024.11.29 (금) 여호수아 24:14-18
2024.11.29 (금) 여호수아 24:14-18
2024.11.262024.11.29 (금) 여호수아 24:14-18 찬송가 15장 여호수아는 ‘모세의 수종자’였습니다. 인간은 할 수만 있다면 섬기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모세가 죽기까지 그를 섬겼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모세의 후계자로 지명하셨고 그는 하나님의 기대대로 사명을 잘 감당했습니다. 그랬던 여호수아가 지금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평생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했던 그로서는 430년을 우상의 땅에서 살았고 이제 우상 숭배가 만연한 가나안에서 새롭게 살아가야 할 이스라엘의 장래가 걱정되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백성의 지도자들을 세겜으로 모은 후 하나님이 베푸신 이스라엘 역사를 회상합니다. 다른 신들을..
2024.11.28 (목) 신명기 6:1-9
2024.11.28 (목) 신명기 6:1-9
2024.11.262024.11.28 (목) 신명기 6:1-9 찬송가 599장 우리 아이들과 청소년, 청년들을 유혹하는 어두운 손길이 사회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어떻게 우리 자녀들을 가르쳐야 할까요? 첫째 제일 먼저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하나님 말씀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거듭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에는 분명하고 확실한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부모가 먼저 본을 보여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를 보고 배웁니다. 부모가 신앙생활을 허투루 하면서 자녀에게 믿음을 이야기한다면 어불성설일 것입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에 이어지는 것이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가르치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
2024.11.27 (수) 누가복음 17:7-10
2024.11.27 (수) 누가복음 17:7-10
2024.11.262024.11.27 (수) 누가복음 17:7-10 찬송가 323장 ‘순종하다’의 원어 ‘휘파쿠오’는 ‘~의 아래에서 듣다’라는 뜻입니다. 즉 아래에서 듣는 것이 순종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주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백하면서도 때대로 종이 아닌 손님 역할을 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종은 수고하고 돌아왔을지라도 결코 주인과 겸상하는 법이 없고 주인이 식사를 다하기까지 온전히 수발을 듭니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만 수고를 하고 나면 금세 대접받는 자리에 앉아 겸상하려는 손님처럼 굴 때가 많습니다. 또한 주인은 종이 모든 일을 행했어도 결코 감사 인사를 할 필요가 없지만 우리는 늘 감사 인사를 받고자 자꾸 내 의를 드러내려고 합니다. 주인의 아래서..
2024.11.26 (화) 마태복음 19:16-22
2024.11.26 (화) 마태복음 19:16-22
2024.11.262024.11.26 (화) 마태복음 19:16-22 찬송가 196장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인간의 힘으로 불가항력적인 고통은 어쩔 수 없더라도 인간이 만들어내는 고통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런 고통 앞에 나는 왜 편안하게 살 수 있는가? 인간의 탐욕에 대한 해답은 공감입니다. 사람들에게 ‘부’란 하나님 복의 증거로 삼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면 오늘 본문의 부자청년은 어떤 면에서는 최악의 신앙인일지도 모릅니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재물 소유의 정도’가 아니라 ‘재물 나눔의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갔습니다. 이로써 청년의 실존이 낱낱이 드러납니다. 청년은 자기가 재물을 소유한 줄 알았겠지..
2024.11.25 (월) 창세기 27:30-45
2024.11.25 (월) 창세기 27:30-45
2024.11.262024.11.25 (월) 창세기 27:30-45 찬송가 388장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하심으로 새롭게 출발한 믿음의 가정에서 벌어진 당혹스러운 스캔들을 발견합니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행위인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는 일을 두고서 일어난 일입니다. 아버지 이삭은 노년에 영적 시야가 흐려져서 하나님의 약속은 잊어버리고 눈앞에 보이는 음식에 집착합니다. 장자인 에서는 신앙을 저버리고 이방인 여인과 결혼해 부모를 근심하게 합니다. 결국 그는 장자의 명분을 죽 한그릇과 바꿀 정도로 신앙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으로 자라납니다. 막내인 야곱의 죄악도 만만치 않습니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와 더불어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복을 얻어내는 치밀한 사기극을 벌입니다. 우리가 야곱의 일생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입..
2024.11.18 (월) 히브리서12:1-10
2024.11.18 (월) 히브리서12:1-10
2024.11.192024.11.18 (월) 히브리서12:1-10 찬송가 272장 살면서 고난과 고통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심지어 잘못을 저질러 징계를 받기도 합니다. 이는 분명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그럼ㅇ도 그리스도인은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고난을 통해 인생이 새로워지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우뚝 서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세상의 성공이나 복이 아닙니다. 오직 거룩함입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면서도 왜 우리에게 고난도 주시고 때론 징계도 하시는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자녀답고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생활을 계속하면서도 변화나 성장이 없는 까닭은 거룩함에 대한 열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허랑방탕하던 탕자가 돌..
2024.11.15 (금) 사도행전 9:10-19
2024.11.15 (금) 사도행전 9:10-19
2024.11.112024.11.15 (금) 사도행전 9:10-19 찬송가 366장 사도 바울에게 영혼의 고통을 씨어 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아나니아입니다. 다메식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그 빛 때문에 며칠 동안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였는데 그대 마침 하나님의 지시로 아나니아가 그를 도와줍니다. 단지 육신의 치료만 도운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전에 자신에게 박해받은 수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의 아픔을 알게 되고 속죄와 치유의 과정을 거칩니다. 사도 바울이 열두 사도 앞에서 사도로 인정을 받고 전도 여행을 할 때 조력자 바나바가 필요했듯이 그가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는 영적 간병인 아나니아의 조력이 필요했습니다. 내 주위에는 바울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
2024.11.14 (목) 시편 99:1-9
2024.11.14 (목) 시편 99:1-9
2024.11.112024.11.14 (목) 시편 99:1-9 찬송가 274장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고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모든 일을 공의롭고 정의롭게 행하십니다. 공의란 하나님과 사람 간의 관계에서 사용됩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시고 그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고 심판하십니다. 반면 정의는 사람 간의 관계에서 사용됩니다. 그러나 공의와 정의가 따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공의가 깨질 때 나와 다른 사람 간의 정의도 깨집니다. 이는 아담이 죄를 지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을 때 책임을 하와에게 전가하며 인간관계도 깨진 것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공의가 깨지면 사람과의 정의도 제대로 세워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거룩하신 하나님은 심판도 하지만 용서해 주시..
2024.11.13 (수) 하박국 2:1-4
2024.11.13 (수) 하박국 2:1-4
2024.11.112024.11.13 (수) 하박국 2:1-4 찬송가 542장 우리 중에 믿음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조금 더 강한 믿음과 약한 믿음이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강한 믿음이든 약한 믿음이든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인내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렸다고 당장 열매가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열매는 일찍 열기기도 하고 어떤 열매는 늦게 열릴 수도 있습니다. 고난을 만났을 때 우리가 힘든 이유는 ’늦게‘ 열리는 열매 때문일 경우가 많습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을 원망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살아 계심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원망 자체가 믿는다는 증거입니다. 다만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인내하며 가꾸면 열매를 맺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인내가 곧 믿음입니다. ’비록 더딜지..
2024.11.12 (화) 누가복음 18:9-14
2024.11.12 (화) 누가복음 18:9-14
2024.11.112024.11.12 (화) 누가복음 18:9-14 찬송가 364장 금식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종교의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예수님 말씀과 달리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를 자랑합니다. 금식을 통해 정기적으로 육신의 본능을 절제하는 신앙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세리는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합니다. 가슴을 치며 하나님께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고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엎드려 눈물을 흘립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보다 세리가 의롭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바리새인이 ’자기 의‘를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자기 스스로를 자랑하는 ’자기 의‘는 마음과 언행에서 ’하나님‘보다 ’나 자신‘을 우선하는 것에서 드..
2024.11.11 (월) 데살로니가전서 1:1-10
2024.11.11 (월) 데살로니가전서 1:1-10
2024.11.112024.11.11 (월) 데살로니가전서 1:1-10 찬송가 400장 믿음의 역사란 언제나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말하고 행동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랑의 수고는 그저 감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희생과 헌신이 뒤따르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또한 소망의 인내는 언젠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오늘 나에게 주어진 무거운 현실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견뎌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 소망, 사랑은 말이나 지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만 가능합니다. 여기서 능력이란 죄인이 회개하고 삶을 돌이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주님의 권능을 말합니다. 성령님은 이 일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도록 역사하며 도우십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큰 확신도 주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