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광장/새벽설교 요약
2024.9.26. (목) 마가복음 8:27-35
2024.9.26. (목) 마가복음 8:27-35
2024.09.232024.9.26. (목) 마가복음 8:27-35 찬송가 569장 믿음의 사람이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끊임없이 토해낼 때 죽음과 같은 고통이 넘실거리는 세상에서도 바위처럼 견고하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다윗도 시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이겨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는 행복하게 마무리 되지 못합니다. ’반석‘이라고 칭찬받았던 베드로가 이번에는 ’다단‘이라고 책망받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짊어지셔야 할 십자가를 알지 못하고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거친 베드로를 끝까지 붙드시고 보석처럼 다듬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원석처럼 다듬어지지 않은 우리 아이들을 아름다운 믿음의 보석으로 가꾸기 위해 ..
2024.9.25.(수) 누가복음 17:11-19
2024.9.25.(수) 누가복음 17:11-19
2024.09.232024.9.25.(수) 누가복음 17:11-19찬송가 93장 세상에는 잔치하는 사람과 예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마무리 할 때 잔치하는 사람은 사람들이 한 일에 주목해 칭찬하고 격려합니다. 열 명의 나병 환자 중 아홉 명을 잔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은혜보다 자기 수고와 노력에 주목합니다. 예수님이 응답하신 것 즉 병을 고쳐주신 것은 자기들이 큰 소리로 부르짖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또한 나병에 어떤 변화나 차도가 없는 상태에서도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했기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잔치하는 사람은 이렇게 인간의 수고와 노력을 칭찬하고 격려합니다. 반면 예배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깨닫습니다. 그들은 기적의 잔가지들을 저부 쳐내..
2024.9.24.(화) 로마서 1:7-10
2024.9.24.(화) 로마서 1:7-10
2024.09.232024.9.24.(화) 로마서 1:7-10찬송가 210장 서로 다른 문화를 지닌 이질적인 민족들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한 교회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바울의 마음에 뜨거운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로마에 가서 그들을 만나 복음으로 양육하고 싶었습니다. 로마 교회를 향한 바울의 사랑은 그들을 위한 쉼 없는 기도로 나타났습니다. 그는 항상 로마 교회 교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거짓이 아님을 하나님께서 잘 알고 계신다고까지 말할 정도입니다. 바울은 비록 자신이 세우지는 않았어도 든든히 성장해가는 로마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들을 위해 마음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배우고 따라야할 신앙의 모범입니다.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임을 고백하는 공교회 개념이 약해진 지금,..
2024.9.23. (월) 시편 91:14-16
2024.9.23. (월) 시편 91:14-16
2024.09.232024.9.23. (월) 시편 91:14-16 찬송가 313장 시편 91편의 중심 단어는 ’너‘입니다. 고난 중에서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먼저 경험한 ’내‘가 현재 고난을 당하고 있는 ’너‘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축복합니다. 지금 ’너‘를 괴롭히는 고난은 한둘이 아닙니다. 새 사냥꾼의 올무와 심한 전염병,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 천명이 왼쪽에서 만 명이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는 재앙 등입니다. ’심한 전염병‘에서 ’심하다‘는 ’부수다‘라는 뜻입니다. 먼저 경험한 고난 속의 은혜가 있기에 몸과 마음을 다 부술 것 같은 고난에 빠진 ’너‘의 고통을 공감하며 위로하는 모습이 아름답고 소중합니다. 고난을 통해 깨달은 하나님의 뜻이었을..
24년 9월 20일 (금) - 마가복음 6:7-11
24년 9월 20일 (금) - 마가복음 6:7-11
2024.09.1724년 9월 20일 (금) - 마가복음 6:7-11 찬송가 501장 복음을 전할 때 첫째 예수님은 오로지 지팡이, 즉 자신을 보호할 막대기만 가져가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전도자들이 신변에 대한 염려보다는 복음 전파에 우선하여 관심을 집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제자들이 떠나는 여행은 사실상 '훈련'이었습니다. '하나님 신뢰 훈련 이었습니다. 혹시 내게 주어진 삶이 각박하고 버겁다면 이를 주님의 훈련이라고 한번 생각해봅시다. 훈련에 담긴 주님의 목적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잘 감당해봅시다. 둘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한 집에 머무르며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십니다. 일단 숙소를 정했으면 여기 저기 옮겨 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개 장소를 옮기는 이유는 자기 맘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편..
24년 9월 19일 (목) - 에베소서 4:1-6
24년 9월 19일 (목) - 에베소서 4:1-6
2024.09.1724년 9월 19일 (목) - 에베소서 4:1-6 찬송가 600장 교회는 하나님의 주권을 세상에 드러내는 통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고 고백하는 처음 자리이고 교회는 하나님을 섬기는 영적 가족들의 공동체입니다. 한 분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이 주신 한 소망이 가정과 교회의 토대임을 기억하고 세상의 모든 교회와 함께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으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킵시다.
24년 9월 18일 (수) - 이사야 30:18-22
24년 9월 18일 (수) - 이사야 30:18-22
2024.09.1724년 9월 18일 (수) - 이사야 30:18-22 찬송가 286장 마치 하나님이 숨어계시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가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짓된 믿음에서 돌이키는 백성에게 발견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바른 길로 걷는 이들의 눈에 보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기 원하시기에 우리가 주님을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면 내가 지금 어디에서 하나님을 찾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숨바꼭질을 즐기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 눈앞에서 은혜를 베풀고 정의를 세우며 복을 주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숨어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숨어버린 것입니다. 청세기 3장에서 아담이 하나님께 ..
24년 9월 17일 (화) - 사도행전 8:26-40
24년 9월 17일 (화) - 사도행전 8:26-40
2024.09.1724년 9월 17일 (화) - 사도행전 8:26-40 찬송가 191장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복음을 전하는 주인공이 누구인가 하는 점입니다. 언뜻 주인공이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들은 도구일 뿐입니다. 이 모든 일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바로 성령'입니다. 빌립이 행한 모든 일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성령님이 명령하셨고 빌립은 말씀에 순종했을 뿐입니다. 그가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사마리아를 넘어 땅 끝 나라인 에디오피아까지 복음이 흘러가게 하셨습니다. 사실 빌립은 이미 예수살렘에서 복음 전도의 기쁨을 맛보았기 때문에 그곳에서 박차를 가해 더 큰 열매를 맺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120~140 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그것도 광야를 지..
24년 9월 16일 (월) - 누가복음 13:18-21
24년 9월 16일 (월) - 누가복음 13:18-21
2024.09.1724년 9월 16일 (월) - 누가복음 13:18-21 찬송가 465장 주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일까요? 첫째 예수님은 겨자씨'에 빗대어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겨자씨는 그냥 겨자씨가 아닙니다. 농부가 자기 채소밭에 가져다가 심은 겨자씨입니다. 농부가 씨앗을 심었다는 것은 그 안에 생명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사실을 알기에 생명이 움트고 자랄 것을 기대하며 땅에 심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나라는 생명을 가진 나라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누룩'에 빗대어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십니다. 누룩은 떡이나 빵을 만들 때 넣어서 반죽을 효모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루 서 말에 넣어서 전부를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만큼 미..
24년 9월 13일 (금) - 갈라디아서 3:23-29
24년 9월 13일 (금) - 갈라디아서 3:23-29
2024.09.0824년 9월 13일 (금) - 갈라디아서 3:23-29 찬송가 399장 바울은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는 율법이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거나 교육하는 등의 기능을 하는 일종의 초등교사 같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을 통해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기 전까지 개인 교사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시고 그와 더불어 그리스도를 믿는 새 언약의 믿음이 우리에게 생기면 우리는 개인 교사와 같은 율법 아래에 있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고 나아가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으면 그 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약속대로 상속자가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율법의 인우..
24년 9월 12일 (목) - 호세아 2:14-20
24년 9월 12일 (목) - 호세아 2:14-20
2024.09.0824년 9월 12일 (목) - 호세아 2:14-20 찬송가 310장 역사를 돌아볼 때 이스라엘 백성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겠다고 반복해서 고백하지만 결국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회복될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다가 오심으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요즘 참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누군가 어떤 잘못을 했을 때 그 사실을 sns를 통해 수많은 사람에게 퍼뜨려서 평생 그 기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형태입니다. 잘못한 사람이 뉘우치고 돌이킬지라도 오래도록 죄인으로 낙인찍혀 살게 됩니다. 물론 죄는 나쁘고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죄보다 더 큰 보복과 비난, 분노를 마주해야 하는 ..
24년 9월 11일 (수) - 베드로전서 4:7-11
24년 9월 11일 (수) - 베드로전서 4:7-11
2024.09.0824년 9월 11일 (수) - 베드로전서 4:7-11 찬송가 523장 간증이 은혜가 된 것은 아마도 그 사람의 경험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직접 겪은 것이기에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베드로서는 특별한 성경입니다. 예수님을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을 이끌고 겟세마네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거듭되는 부탁에도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너 무 피곤해서 그랬을까요? 내일 기도하면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바로 몇 시간 후에 벌어진 일은 끔찍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것입니다. 아마 인생의 지우개가 있다면 깨끗이 지우고 싶은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우리에게 호소하는 게 무엇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