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2월 3일 (화) - 시편 62:5-12
26년 2월 3일 (화) - 시편 62:5-12
찬송가 95장
그리스도인은 희망과 낙관을 구분해야 합니다. 낙관이 막연하게 잘될 것이라는 자기 최면이라면 희망을 현실의 모순과 고통에 굴하지 않는 명확한 근거라고 말합니다. 현실의 모순과 잘못에 눈을 감고 막연하게 미래를 좋게 보는 것이 낙관이라면 희망을 이 모순적 현실을 '변혁'하고 극복하기 위한 '열망'이라는 것입니다. 즉 희망은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을 보는 것입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소망이라는 말이 아니라 소망이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소망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소망을 희망과 연결해 본다면 하나님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막연한 낙관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현실의 모순과 잘못에 굴하지 않는 열망을 주시는 분, 곧 희망의 원천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란다는 것은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는 열망을 받는다는 것이며 잠잠히 하나님을 바란다는 것은 이 현실에 흔들리지 않고 현실을 이겨내는 힘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현실의 모순은 사회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개인의 삶이 될 수도 있습니다. 즉 개인의 삶을 넘어설 힘이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망도 우리가 몸 담고 있는 교회의 변혁도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기도하고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희망을 찾아내야 합니다. 시대와 상황은 쉽게 바꾸지 못하지만 적어도 나의 삶은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성, 곧 하나님의 형상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을 나부터 그리고 교회로부터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낙관이 아닌 희망이 우리를 인도하고 그 희망을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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