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1월 6일 (화) - 에베소서 4:11-16
26년 1월 6일 (화) - 에베소서 4:11-16
찬송가 542장
우리는 그에게까지 자라야 하는데 " 그는" 바로 우리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까지 자라야 합니다.
어린아이같은 사람-다 자라지 못한 이를 우리는 어린아이라고 합니다. 어린아이 믿음의 특징 이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이들은 다 자라지 못한 영적 어린아이입니다.
자라나지 못한 어린이는 다음과 같은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1. 속임수에 빠집니다.
속임수는 헬라어로 '퀴베이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사위를 던진다>라는 의미입니다.
국어사전에는 <간사하게 속이는 술책>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정직하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합 니다. 금방 탄로 날 것도 거짓말을 합니다. 손해 보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속임수에 빠지지 않는 인격입니다.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속임수입니다.
.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 같은 믿음은 항상 가장을 합니다.
속임수가 있다는 것은 자라지 못하였다는 증거입니다.
2. 간사한 유혹에 빠집니다.
이는 영분별이 아직 안 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간사하다는 말은 앞뒤가 다르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와가 간사한 마귀의 유혹에 빠졌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된다는 말에 유혹을 받았습니다. 장성한 믿음은 간사한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어떤 목동이 늑대 새끼와 개 새끼를 길렀습니다. 둘은 잘 자라 주인의 말을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개보다 영리한 늑대가 주인의 말을 더 잘 들었습니다. 주인은 둘을 데리고 양을 길렀 습니다. 늑대는 주인이 있을 때는 개보다 더 양떼들을 잘 보살폈습니다. 그러나 간사하였습니 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이 출타하게 되었습니다. 늑대는 양을 한 마리 두 마리 잡아먹기 시 작하였습니다. 주인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정반대의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늑대같이 간사한 사람은 아직 성장하지 못하였다는 증거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아 냅니다. 예수님은 양의 탈을 쓴 이리라고 표현하셨습니다.
3. 풍조에 밀려 요동합니다.
성장하지 못한 어린아이는 풍조에 밀려 요동합니다. 마음이 자주 흔들립니다.
바람에 따라서 항상 움직입니다. 그래서 끈을 늘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잠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항상 불안합니다. 감정이 불안합니다.
기분 나쁘면 그대로 토하여 냅니다. 듬직하지가 않습니다. 참을성이 없습니다.
풍조에 흔들립니다. 감정에 흔들립니다. 아직 성장하지 못 하였다는 증거입니다.
자기 주관이 분명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온전한 사람- 다 자란 사람을 바울은 <온전한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고린 도 교회를 향하여서도 말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13:11) 그러면 어떻게 하면 온전한 사람이 될 수가 있을까요?
1. 믿는 일에 하나가 되면
믿는 것에 하나가 되어야 예수님까지 자라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 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3)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16) 믿는 일에 하나가 되지 못하면 큰일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에 하나가 되지 못하면 큰일 납니다.
피아노를 교회 오른 쪽에 놓자는 교인들과 왼쪽에 놓자는 교인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져 갈라 진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 것에는 하나가 되지 못 하여도 됩니다. 큰 일이 아닙니다. 어느 쪽 에 놓아도 됩니다. 심지어 피아노가 없어도 됩니다.
그러나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믿음에 하나가 되지 못하면 안 됩니다. 장성한 믿음 이 아닙니다.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같은 행동이 나오게 됩니다. 같이 믿고 같이 전진하여 야 같이 성장한 성도가 됩니다.
2. 아는 일에 하나가 되면
예수님에게까지 자라나는 것이 신앙의 목표입니다. 그러려면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 다. 성경의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천국과 지옥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를 알아야 합니다.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호세아는 외쳤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 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 4:6) 솔로몬도 말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 를 멸시하느니라"(잠 1;7)
베드로도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 어다"(벧후 1:2)
그에게까지-그래서 믿음의 목표를 달성하여야 합니다.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어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 지니라"라고 목표를 말해주고 있 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님까지 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까지 자란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속임수도 버려야 합니다./간사도 떠나야 합니다./유혹도 받지 말아야 합니다.
15절에 "사랑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라는 말씀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안에서 참된 것을 할 때 그에게까지, 예수님까지 자라는 장성한 자의 믿음이 된다 고 바울은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느 정도까지 사랑안에서 참되게 살으셨나요?
죽기까지/살기까지-이 두 가지가 예수님의 수준입니다. 우리가 자라야할 수준입니다.
그에게까지는 이 두가지입니다. 죽기까지/살기까지 예수님을 잡으러 온 로마 병정 말고를 향하여 베드로가 칼을 휘둘렀습니다. 귀가 잘라졌습니 다. 아마 죽이려 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땅에 떨어진 귀를 들어 붙여 주시면서 말씀하셨 습니다. "이것까지 참으라." 이것이 예수님의 인격의 수준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우리이 수준이 이 정도까지 가야 한다는 말입니 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기까지 기다리셨습니다.
더 비워야 합니다./더 내려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 "그에게까지 자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요구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되기를 오늘도 소원하고 계십니다.
아무리 예뻐도 목없으면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의 지시 를 받는 우리가 되어야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 합니다.
기도: 오늘 주님을 닮아가기까지 순종하며 성장하는 믿음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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