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9월 2일 (수) - 고린도전서 9: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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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505장
사도 바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그 자체가 말할 수 없는 기쁨이자 특권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내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삶을 변화시키지 않는 복음은 사실 복음이 아닙니다. 진정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충분한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음 전하는 것 자체가 허락하신 사명이자 기쁨이기에 사도 바울은 이를 통해서 자신을 내세우거나 특혜 받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자신을 통해서 주님께서 하신 일만 자랑하길 원했던 것입니다. 복음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이 있는 사람은 삶을 통해서 주님을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복음으로 인해 아무런 변화도 경험하지 못한 자는 결코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과의 깊은 교제와 사귐의 이야기를 풍성히 나누는 것이 곧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 삶의 의미를 완성시킵니다. 즉 복음을 나눈다는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내 삶에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중세교회가 스스로를 은혜의 통로로 여기지 않고 은혜 그 자체라고 주장했을 때 타락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복음을 삶으로 증거 하는 신앙은 권리 주장이나 보상을 기대하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주님 안에서 더 깊은 은혜를 누리는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복음 전파의 주도권은 내가 아니라 주님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다른 이에게 나누기 시작할 때 나의 삶은 복음의 메시지가 됩니다. 내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주님이 날 위해 행하신 일을 드러냅시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십니다. 예수님만 자랑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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